세계의 작곡가

낭만주의 대표주자 – 구스타프 말러

세계의 유명 작곡가들을 소개해드리는 ‘세계의 작곡가’입니다. 오늘은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주자인 구스타프 말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말러는 1860년 체코 보헤미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주조업과 여관 경영을 한 아버지 덕에 생활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가정이었지만 그의 유년 시절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총 열다섯 남매를 둔 대가족이었는데요, 말러가 15세가 채 되기 전 8명의 형제를 잃었습니다. 또 부모님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었죠. 이때의 기억들은 훗날 그의 음악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집안은 유대 민족이었습니다. 유태인 집안답게 교육에도 소홀하지 않아 말러가 6살 되던 해부터 음악 공부와 학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유명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말러의 재능 또한 훌륭했습니다. 어린 말러가 가장 많이 들은 건 농민음악과 군대음악이었는데요, 이때부터 음악 대부분을 암기하고 곡들에 대한 나름의 평가까지 합니다.

말러는 15세 되던 해 빈 국립음악원에 입학합니다. 피아노와 작곡, 지휘를 전공했죠.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작곡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말러. 결국 1880년 바트할의 여름극장에서 무대에 오르며 지휘자로 데뷔합니다.

지휘자로서의 말러는 ‘승승장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나갔습니다. 1883년엔 독일의 카셀 왕립 오페라 극장의 부지휘자가, 1888년엔 부다페스트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이 됩니다. 카셀 왕립 오페라 시절엔 소프라노 요한나 리히터(Johanna Richter)를 짝사랑했는데요, 이때의 실연의 아픔을 연가곡인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로 승화시킵니다. 이 즈음 말러는 후기 낭만파의 또다른 거장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만납니다. 감성적인 말러와 이성적인 슈트라우스. 성격상으론 절대 맞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죽이 맞았습니다. 서로의 곡을 지휘하기도 한 둘은 1887년 라이프치히에서 만난 이후 죽을 때까지 막역하게 지냅니다.

1897년 말러는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정지휘자가 됩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선 가톨릭이 아닌 사람은 관직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이던 말러는 고민 끝에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죠. 빈 시절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입니다. 반려자인 알마 신틀러(Alma Schindler)를 만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두 딸을 얻었으며, 마음이 평화로운 탓인지 곡도 잘 쓰였습니다. 빈 시절 말러는 교향곡 4,5,6,7,8번을 차례로 완성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1907년 장녀인 마리아 안나가 병으로 숨진데 이어, 말러 본인도 심장병 진단을 받습니다. 또 19세기말 유럽을 강타한 반유대주의로 인해 감독직에서도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듬해 말러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지휘봉을 받습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물러난 후에는 뉴욕필하모닉을 지휘하죠. 하지만 이미 이때 말러의 시계는 자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부인 알마의 외도로 인해 생활도 엉망이 됐습니다. 1911년 2월 말러는 연쇄상구균 감염 중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마지막 무대가 된 공연을 마칩니다. 이후 파리로 건너가 치료받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빈으로 옮겨와 1911년 5월 18일 50세라는 짧은 생을 마칩니다.

말러는 교향곡에 특히 주력한 작곡가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교향곡을 만들었는데요, 악기 편성과 악장 길이를 늘려 대형화된 교향곡을 선보이는가 하면, 실내악적인 교향곡, 서정적인 노래를 하는 교향곡도 있습니다. 그의 교향곡은 꽤나 긴 길이를 자랑합니다. 한 악장이 30분을 넘기는가 하면, 교향곡 하나가 100여 분에 이르기도 합니다. 군악대를 연상케 하는 트럼펫소리와 유대인 밴드를 떠올리는 클라리넷 소리가 조화를 이루죠. 고정적 형식과 감성적 내용이 조화를 이루는 독일 관현악의 특징과, 풍부한 선율을 가진 오스트리아 관현악의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말러의 음악은 그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그랬고, 유년시절의 우울한 기억은 성악곡 ‘탄식의 노래’를 탄생시킵니다. 9번 교향곡에 해당하는 ‘대지의 노래’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득합니다.

사실 살아 생전 작곡가로서의 말러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지휘자이기보단 작곡가로 불리고 싶어했던 말러. 스스로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요, 결국 그의 예언은 1960년대 이후 재평가가 이뤄지며 사후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실현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 중 하나인 말러. 우울했던 그의 삶이 현재의 호평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되길 바랍니다. 이상 세계의 작곡가 구스타브 말러였습니다.

 

※ 말러의 교향곡 1번 연주 바로보기 클릭!!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말러의 교향곡 2번 연주 바로보기 클릭!!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말러의 교향곡 3번 연주 바로보기 클릭!! (싱가포르 국립 오케스트라)

※ 말러의 교향곡 5번 연주 바로보기 클릭!!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말러의 교향곡 9번 연주 바로보기 클릭!!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 이지수의 원포인트 엑섭 ‘말러 교향곡1번’편 바로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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