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작곡가

독일 근대의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이번 코너는 새로 선보이는 ‘세계의 작곡가’입니다. 음악을 이해하는 데는 그 곡을 만든 작곡가를 먼저 알아야 도움이 되겠죠?

 

오늘 소개할 작곡가는 앞서 소개한 ‘차라투스트라는 ~~’의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입니다.

 

슈트라우스는 뛰어난 관현악법을 통해 교향시 분야에 사상 최대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 작곡가입니다. 뛰어난 호른 연주자이기도 하죠.

슈트라우스는 1864년 뮌헨 궁정악단의 호른 주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또한 음악 애호가인 음악 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했습니다.

 

슈트라우스의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빛이 났습니다. 6살 때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그의 첫 작품인 축제 행진곡이 12살 때 탄생했습니다. 또 13살 때엔 멘델스존의 협주곡과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많은 음악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바이올린을 베노 발터에게 배웠고 마이어에게 작곡을 배웠습니다. 당처 슈트라우스는 바그너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반 바그너주의자인 아버지 때문에 브람스 쪽에 치우쳤었죠. 하지만 대학 시절 철학과 미학 강의를 들으며 세계관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결국엔 열렬한 바그너 신봉자가 됐습니다. 바그너의 악극과 관현악법을 계승했고, 리스트풍의 교향시를 확충해 낭만주의 음악에 마지막 방점을 찍었습니다. 특히 그는 말년에 작곡자로서의 사명을 깨닫고 독일남부지방의 아주 작은 도시인 Garmisch Partenkirchen(가르미쉬 파르텐키르헨)에 칩거, 작곡에 전념하며 수많은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교향시인 돈주앙,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변용 등이 있고요, 악극 살로메, 장미의 기사 등도 유명합니다.

 

슈트라우스에겐 오점이 있습니다. 나치 정권에 협력했다는 혐의입니다. 결국 전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그의 명성엔 많은 얼룩이 지고 만 뒤였죠.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독일 후기 낭만파의 마지막 대표 주자라는 공적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바로보기 클릭!!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 슈트라우스의 돈주앙 바로보기 클릭!!  (북독일 방송 엘프필하모니 관현악단 N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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