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작곡가

러시아 관현악의 대가 –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세계의 작곡가 시간입니다. 오늘은 러시아작곡가 5인방의 하나인 ‘관현악의 대가’ Nikolay Andreyevich Rimsky-Korsakov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러시아 노브고로드 근방 티흐빈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6살 때 피아노를 배우는 등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나 그가 택한 길은 음악가가 아니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12살이던 1856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소년시절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냅니다. 18살엔 사관후보생이 돼 계속 배를 타고 다닙니다.

 

그래도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음악 공부를 멈추지 않습니다. 틈날 때마다 악보를 들여보고 피아노를 쳤죠. 아마추어 음악인인 그를 프로의 길로 인도한 건 러시아 5인방 중 하나인 Milii Alekseevich Balakirev입니다. 발라키레프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바다에 가지 않는 날을 골라 음악을 가르치죠. 그의 가르침과 조련에 의해 탄생한 곡이 바로 1865년 발표된 ‘교향곡 1번’입니다. 러시아인이 만든 최초의 교향곡이죠. 이 곡의 성공으로 본격적인 전문 음악가가 됩니다.

 

1867년엔 관현악곡 ‘Sadko’와 교향곡 2번인 ’Antar’를 완성하며 독자적 작풍을 확립해 갑니다. 1871년엔 상트페테르부크 음악원의 작곡 교수가 되죠. 교수가 되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교육과 더불어 음악 지식과 기술의 연구 및 수양을 병행합니다. 러시아 민요 수집과 연구도 함께 시작하죠. 지휘자로서의 활동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입니다.

 

1880년대는 정말 바쁘게 지낸 시기입니다. 1888년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헤라자드’를 발표하고, 먼저 간 무소륵스키의 작품을 출판/정리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곡한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이 하룻밤’은 원곡보다 더 널리 연주되죠.

 

1905년엔 정치적 관점이 학교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직됩니다. 하지만 이에 동료들이 반발하며 단체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결국 학교는 해직을 취소합니다. 얼마 있지 않아 정말 퇴임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개인 교습 및 저서를 저술하며 후학 육성에 전념합니다. 이때 만들어진 책이 바로 작곡과 학생들의 필수 교과서로 꼽히는 ‘관현악법 원리’입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서양음악사상 가장 뛰어난 관현악법의 대가라고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에선 매우 독특하고 화려한 관현악법이 구사되는데요, 기존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상상력과 영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방현의 경우 당시에 금기로 여겨졌는데요, 그의 작품에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피치카토, 하모닉스 등의 주법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관악기로 현악기 느낌을 내기도 합니다. ‘관현악법이란 창조될 뿐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서도 림스키코르사코프라는 음악인이 추구하는 작풍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무소록스키, 보로딘 등과 함게 러시아 5인조 중 하나에 속합니다. 그런 뛰어난 인재 가운데에서도 기술적으로 가장 높게 평가받죠.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여러 음악가들이 그의 관현악법에 대해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대표곡은 ‘세헤라자데’, ‘스페인 기상곡, ’러시아 부활제 서곡‘ 등인데요, 특히 그가 만든 관현악곡에선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화려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제대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가야할 새로운 길을 열어준 림스키코르사코프, 작곡가는 물론 많은 음악인들이 존경할만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관현악의 대가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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