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작곡가

러시아 국민악파 –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륵스키

세계의 작곡가 시간입니다. 오늘은 러시아의 대표 작곡가인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륵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무소륵스키는 1839년 러시아 카레보(Karevo) 출생입니다. 대대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에게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에 눈을 떴는데요. 아홉 살 무렵부터는 리스트의 소품곡을 연주할 정도였으니 그 재주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소륵스키는 비교적 부유한 환경 속에 평탄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13살에 가문의 전통에 따라 근위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러시아 황실근위대에 배속되어 군 생활을 이어갔지만, 마음 한켠에 음악에 대한 미련이 늘 있었던 걸까요. 21살 무렵 군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하지만 곧 무소륵스키와 그의 가족들에게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칩니다. 1856년 러시아제국이 오스만투르크 연합군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러시아 전체에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는데요. 당시 러시아 ‘알렉산더 2세 황제'(Alexander II of Russia)는 개혁을 목적으로 농노해방령을 선포하고 모든 토지를 농민에게 돌려주는 대개혁을 실행합니다. 이에 지주 가문이었던 무소륵스키 집안은 재산 대부분을 잃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1865년, 무소륵스키의 어머니는 갑작스런 불행을 이겨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이때부터 그는 과도한 음주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불규칙한 삶의 절정을 이루게 되죠.

 

이 시기에 무소륵스키의 곁에서 큰 힘이 되어준 두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요. 바로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빅토르 하르트만(Victor Hartmann)과 평론가였던 블라디미르 스타소프(Vladimir Stasov)입니다. 이들은 수시로 모여 예술에 대해 토론하고 조국인 러시아의 앞날을 함께 고민하는 막역한 친구였죠. 특히 하르트만은 부모를 일찍 여읜 아픔이 있었기에 어머니를 잃고 실의에 빠진 무소륵스키의 마음을 누구보다 헤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세 친구에게 뜻밖의 슬픔이 찾아옵니다. 1873년, 하르트만이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동맥류 파열로 세상을 떠나버린 거죠. 예민한 성격의 무소륵스키는 우울증에 이를 정도로 슬픔에 빠지고 맙니다. 이를 지켜보던 스타소프는 떠나간 친구, 그리고 남겨진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결과 열리게 된 것이 하르트만의 추모 전람회였습니다. 하르트만이 남긴 수채화나 데생 작품들과 건축 스케치, 의상디자인까지 포함된 유작 40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거죠. 이 자리에 참석한 무소륵스키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친구의 꿈이 또 다른 방식으로 펼쳐졌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친구의 유작을 보며 스쳐가는 영감으로 피아노 모음곡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무소륵스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입니다.

 

‘전람회의 그림’은 19세기 가장 독자적인 피아노곡으로 평가받는데요. 이 작품이 특별한 건 무소륵스키 특유의 독창성 때문입니다. 모두가 고집불통이라 부를 만큼 음악적 발상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동시대 작곡가들의 영향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음악 모델을 구축하려 애썼죠. 사실 무소륵스키는 정규 음악교육에서 멀찍이 비켜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운 것 외에는 언제나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는데요. 덕분에 그의 음악적 영감은 제도권 음악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세련되지 않은 작곡 기법이지만 그만큼 거칠고 원시적인 생명력을 담고 있죠.

 

무소륵스키는 민족주의 음악가 또는 러시아 음악의 개혁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이끌었던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일원이었는데요. 혼란의 시기를 살아가는 민중의 삶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다독였습니다. 특히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는 러시아판 맥베스(Macbeth)로 불릴 만큼 유명한데요. 유럽에서는 시골의 소극장에서부터 대도시 큰 공연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대에서 꾸준히 상영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권력의 지배에 고통 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생생히 담고 있는데요. 무소륵스키의 음악에 대한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죠. 당시 그가 남긴 작곡 메모에는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민중은 위대한 인격체다. 나는 밤낮으로 민중을 보고, 민중을 생각하고, 민중을 노래한다. 민중만이 거침없이 위대하고, 꾸밈없이 독보적이다.”

 

훗날 무소륵스키는 알코올 중독과 가난에 시달리며 42년의 짧은 생을 마쳤지만, 민중의 삶과 고통에 귀 기울인 그의 음악은 아직까지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작곡가 무소륵스키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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