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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지휘자의 역사가 시작되었을까요?

최초로 신적 권위를 가진 지휘자는 누구였을까요?

[Orchestrastory]

 

지휘자는 여러 연주자들이 같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오케스트라에서 곡을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 지휘는 다양한 동작들과 표정을 사용하여 음악을 이끄는데, 주로 빠르기, 박자, 리듬, 셈 여림등 음악의 변화를 지시해주고, 각 악기 연주자에게 적절한 사인을 전해주면서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휘자에 따라 재현된 작품들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휘자의 역사를 보면 고대 그리스시대까지 올라갑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휘자처럼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지휘자의 존재의 기록이 있습니다.
지휘봉은 언제 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을까요?
루이 14세 시대 궁정악단 지휘자 장 밥티스트 륄리가 최초로 지휘봉을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 악단은 교회나 궁정, 실내연회나 무도회에서는 현악연주를, 국빈 영접때에는 관악기와 타악기까지 동원되어 연주했습니다. 그가 지휘할때 사용한 지휘봉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지팡이를 바닥에 두드리며 지휘했습니다. 이전에는 바이올린 활이나 악보를 말아서 지휘봉처럼 사용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궁정과 교회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궁정이나 교회에서 반주하는 단체에 불과했습니다. 이 시대는 하프시코드연주자 혹은 바이올린연주자가 지휘자 역할했었습니다. 하지만 , 연주하면서 발이나 손으로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박자를 잡아주는 역할정도만 할 수 있었고, 음악 전체를 이끌기에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교향곡이 구색에 맞춰 연주된 하이든 시대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약 20여명 이였습니다. 하이든은 바이올린10명, 비올라, 첼로,오보에,호른,바순 연주자는 2명씩 그리고 하이든은 직접 건반 악기를 연주하며 이끌었습니다.

점차 오케스트라 발전이 이루어지며 궁정이나 교회뿐 아니라 대규모의 음악당, 오페라하우스가 건설되었습니다. 무대가 커지고 콘서트홀이 커지면서 관객들이 늘어나고 오케스트라의 단원수도 대규모로 바뀌었습니다.지휘자가 설 수 있는 지휘단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베토벤을 거쳐 낭만주의로 가면서 큰 규모의 관현악곡이 등장하면서, 지휘자없이 연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복잡해지고 통제해야할 악기수가 많아지면서 누군가 앞에서 통제하고, 이끌어줄 지휘자의 필요성이 생긴 것 입니다.
지휘자가 자신의 정서 및 해석에 따라서 안단테를 조율하고, 포르테를 조율하게 된 것이죠.
즉, 누가 지휘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안단테가 다른 지휘자에 비해 조금 느리고 혹은 조금 빠르게 될 수 있는 것 입니다.

후기 낭만주의의 오케스트라 편성은 더욱 더 확대되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한 빈필하모닉 단원은 104명이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467명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구상하기도 했었습니다.
말러가 쓴 교향곡 8번 천인교향곡은 1000명의 연주자가 필요했습니다.
이 시대는 지휘자의 권위는 신에 가까워졌습니다.
음악을 해석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절대자로 무대위에 섰습니다.

19세가 말 거장들의 영향으로 독일을 중심으로 낭만주의 지휘계보가 성립되었습니다.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던 폰 뷜러는 최초로 신적 권위를 가진 지휘자 상을 확립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뒤이어 아르투르 니키슈, 이후 푸르트벵글러가 물려받아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의 전통을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놨습니다. 브로노 발터, 클라이버등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오케스트라스토리 이진영 기자
orchestrastory@gmail.com

#지휘자의역사 #오케스트라 #지휘자 #지휘자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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