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작곡가

왈츠의 왕 – 요한 슈트라우스

세계의 작곡가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곡가는 ‘왈츠의 왕’으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입니다.

 

슈트라우스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아버지 J.B 슈트라우스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슈트라우스를 ‘왈츠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 슈트라우스는 처음 아들을 상공학교에 입학시키려 했습니다. 음악가로는 절대 키우고 싶지 않았죠.

 

하지만 피는 못 속인다는 옛말처럼 음악에 대한 아들의 열정도 엄청났습니다. 혼내고 때리기까지 했지만 슈트라우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가의 꿈을 키웁니다. 18살이던 1843년 부모가 별거를 하자 이를 기회로 음악에 더 빠져듭니다.

 

이듬해엔 15인조 악단을 조직, 무도회에 데뷔해 성공을 거둡니다. 1849년 아버지가 죽자 그의 악단마저 지휘합니다. 동생인 요제프(Josef), 에두아르드(Eduard)와 함께 ‘슈트라우스 형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빈 사교계를 석권합니다. 그럼에도 공화주의자라는 이유로 황실에 찍혀 알짜배기 직책은 얻지 못합니다.

 

1850년대에도 그의 음악활동은 열성적이었습니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다니죠. 작곡도 열심히 했는데요, 53년엔 30개에 가까운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그의 활력을 몸이 버티지 못했고 병석에 눕고 맙니다. 1855년 건강을 회복하자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연주여행을 떠납니다.

 

1862년 가수인 헨리에테 트레프츠(Henrietta Treffz)와 결혼합니다. 이듬해엔 그토록 바라던 궁정무도회 감독에 임명되죠. 68년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완성합니다. 하지만 1870년 어머니와 동생 요제프가 사망하며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엔 왈츠보다 오페레타에 주력합니다. 대표적 오페레타인 ‘박쥐’는 1874년 빈에서 초연됩니다.

 

1878년 아내 트레프츠가 죽자 30세 연하인 안젤리카 디트리히(Angelika Dittrich)와 재혼합니다. 하지만 둘은 얼마 못 가 헤어지고, 슈트라우스는 87년 다시 아델레 도이치(Adele Deutsch)와 결혼합니다. 도이치와의 생활은 아주 화목하고 축복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슈트라우스는 아내의 보살핌 속에 1899년 노환과 폐렴으로 사망합니다.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슈트라우스는 왈츠의 대가입니다. 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곡 하나하나가 히트작이었는데요, 동시대 작곡가인 브람스, 바그너 등도 슈트라우스의 곡을 사랑했습니다. 브람스의 경우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악보를 받아들고는 “불행히도 브람스의 작품이 아니군요”라며 감탄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슈트라우스의 라이벌은 가족이었습니다. 아버지 슈트라우스는 음악적 라이벌인 동시에 그가 극복해야할 이름이었고, 동생들은 연주자, 작곡가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습니다. 가정사가 복잡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20대 초반부터 성공가도를 달렸고, 죽을 때에도 사랑하는 아내의 품에서 조용한 안식을 취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까지 세계의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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