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작곡가

체코 음악의 아버지 –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세계의 작곡가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곡가는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rich Smetana)입니다.

스메타나는 1824년 체코 라토미실(Litomyšl)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프란티섹(František)은 맥주 양조업자였는데요, 현악 4중주단의 일원이기도 해 스메타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친숙했습니다. 다섯 살 때 4중주곡 연주를 했고 여섯 살 때 대중 앞에 피아니스트로 섰습니다.

1839년 가을, 청년이 된 스메타나는 음악을 배우겠다는 결심으로 프라하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반려자가 되는 카테리나를 만나고, 그녀의 권유로 요제프 프로크시에게 가르침을 받습니다.

1848년 오스트리아 2월 혁명의 여파로 프라하에도 혁명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운동엔 스메타나도 가담하는데요,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놓인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으로서의 의식에 눈을 떠 민족운동에 헌신하기로 맘 먹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실패하고 스웨덴으로 건너갑니다. 거기서 괴텐부르크 하르모니스카 사라카헤트의 지휘자로 취임합니다. 합창과 오케스트라에 대한 실제를 경험하고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시기였지만 엄청난 불행이 그를 찾아옵니다. 바로 부인 카테리나를 잃은 것이죠. 스웨덴의 추위를 못견딘 그녀는 결국 결핵으로 사망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작품 활동을 쉬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낸 작품이 ‘리처드 3세’, ‘하콘 야를’, ‘발렌슈타인의 진영’ 등인데요, 모두 전쟁에 관한 교향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시 오스트리아로 건너간 스메타나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탄압이 느슨해진 틈을 타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지휘, 작곡 등 본연의 일은 물론 민족운동까지 적극적으로 하죠. 1862년은 그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팔려간 신부’를 상연, 큰 성공을 거둡니다. 팔려간 신부는 모차르트의 곡과 비슷해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스메타나는 “국민주의의 음악은 민요의 리듬과 비슷해 선율을 흉내내는 것만으론 창조되지 않는다”고 반박합니다.

스메타나는 1874년 환청이 악화되고 급기야 귀가 아예 멀어버립니다. 하지만 창작활동은 왕성하게 했는데요, 이 시기에 그의 최고 작품이라 불리는 ‘나의 조국’을 내놓습니다. 1882년 정신 이상 증세가 생긴 그는 결국 1884년 프라하 정신병원에서 숨집니다.

스메타나는 국민 음악적 요소를 채용, 전통적 수법으로 예술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오페라에는 민족적인 소재를 주로 사용했고, 교향시에는 리스트 등 신독일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페라엔 민족적 내용이 많았고, 음악에는 폴카, 프리안트 등 민족 무용의 리듬을 많이 도입했습니다. 음악에서 드러나듯 스메타나와 민족의식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그의 가극과 교향시 곳곳에 녹아 있었습니다. 낭만을 사랑한 민족주의자 스메타나. 체코 사람들이 그런 그를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건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 베드르지흐 세메타나의 나의 조국 바로보기 클릭!! (북독일방송 엘프필하모닉 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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