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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을 둘러싼 논쟁, 나쁜 사람인가 좋은 지휘자인가?

[Orchestrastory]

만약 지휘자가 중대한 개인사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의 음악을 들어야할까? 그 지휘자가 유명할 수록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 Christa Ludwig) 는 카라얀을 신이라고 설명한다. 음악가, 평론가 및 청취자들은 경외심을 가졌고, 지휘계의 손댈 수 없는 사람으로 오랫동안 간주해왔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의 씁쓸한 인생 이야기는 지울 수 없다. 그는 악명 높은 나치 당원의 일원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오랫동안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팬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사실 카라얀만 이 시대의 불편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 카를 오르프(Carl Orff), 칼 뵘 (Karl Bohm) 그리고 바그너 또한 인종주의 사상으로 논란이 됐다.

헤리베르트 폰 카라얀은 활동 중에도 계속 논란에 휩싸였었다. 그는 열렬한 나치당원이었는가, 아니면 야심적인 기회주의자였는가. 만약, 그가 열렬한 나치 당원이었다면 우리는 그의 앨범을 존중해야 할가? 도덕적 책무와 음악적 성취중에 어디에 더 무게를 두워야 할까? 얼마나 예술성이라는 말로 관대해야 할까?

카라얀은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비엔나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다. 1909년1월 그의 첫 무대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오케스트라였다. 그의 데뷔 오케스트라는 지역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했다. 그는 1933년 스물 다섯에 카라얀은 나치에 입당한다. 그리고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에 지취자로 참가할 수 있었고, 독일 울름(Ulm)시립 오페라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27세에 아헨 극장 음악 총감독으로 임명되었고 나치 당원으로 더 활발히 활동했다. 많은 지휘자가 독일에서 추방되면서 카라얀은 독일에 남아 지휘자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전쟁이후 카라얀은 1945년에 오스트리아로 송환되었고, 2년간 지휘활동을 금지당했다. 그러나 그에게 영국의 유명 프로듀서 월터 레그 ( Walter Legge)의 도움으로 무대에서 지휘하지는 못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지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레코드 산업이 활발해 지며 그는 계속해서 활동했다. 이후 그는 필하모니아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고,베를린 필의 종신 지휘자가 되었다. 이어 그는 빈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베를린 필과 빈 필하모닉이라는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를 카라얀이 이끌게 된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탁월한 사업능력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음악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음반은 엄청나게 팔렸고, 지휘계에서 그의 명성은 대단하다.

그의 수많은 음반중에 바르톡의 “현과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음악”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 있다. 바르톡은 나치의 압박을 피해 1940년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독일에서 바르톡이 인기가 있을때에도 독일에서 콘서트를 거부하기도 했던 그는 미국에서 건강악화로 사망했다. 카라얀이 지휘한 바르톡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는 각자의 숙제이다.

카라얀, 그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교회 앞에 묻혀있지만 그는 여전히 논란속에 살아있다. 그의 생애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몫으로 남겨졌다.

오케스트라스토리 이진영 기자
orchestrasto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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