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작곡가

헝가리의 작곡가 – 벨라 바르톡

세계의 작곡가 시간입니다. 오늘은 헝가리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또 음악학자인 벨라 바르톡(Bela Bartok)을 이야기합니다.

 

 

1881년 헝가리 나지센트미클로슈(Nagyszentmiklos) 출생으로

5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 배움. 9살 때 작곡 시작. 10세 때 자작 피아노소품곡 연주하며 음악적 재능 발휘하여 11살 때 최초의 연주회 가졌습니다.

 

1899년 부다페스트 왕립음악원 입학해 이스트반 토반(Istvan Thoman)에게 피아노 사사, 작곡을 야노스 쾨슬러(Janos Koessler)에게 배웠고 1902년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부다페스트 초연을 듣고 작곡에 대해 관심 갖기 시작했습니다. ‘영웅의 생애’는 피아노로 편곡해 직접 연주할 정도로 슈트라우스에 열광했습니다. 이 작품의 영향에 민족 의식이 더해져 1903년 교향시 ‘코수트’와 1904년 ‘랩소디’ 작곡하였고 1905년부터 작곡가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와 함께 곳곳을 여행하며 헝가리 민요 수집 시작하여 마자르족의 민속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사용해 1906년 코다이와 함께 최초의 민요집 ’20개의 헝가리 민요’ 출판했습니다.

 

1907년 왕립음악학원에서 피아노 교수직을 맡으며 정착. 수익에 안정이 생겨 작곡활동과 민요 수집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는데 동시에 인상파의 화성법, 쇤베르크의 표현주의,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영향 받으며 독자적 스타일 확립해나가 관현악에서도 슈트라우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11년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인 ‘푸른 수염의 성’을 부인인 치글러 마르터(Ziegler Marta)에게 헌정하며 오페라를 공연하려했으나 작사자인 벌라주 벨라(Balazs Bela)의 정치적 성향이 문제가 돼 작사가의 이름을 지우라는 압력을 받아 바르톡은 이를 거부해 오페라가 1918년까지 공연을 못했습니다.

 

1차 대전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패배로 끝나며 헝가리에 혼란이 생기며 바르톡의 경제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1919년엔 건강이 크게 악화돼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가게 되고 이름. 정치적 문제로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작곡을 이어갔습니다. 발레곡 ‘중국의 이상한 관리’와 ‘두개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이때 탄생했는데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의 작품 중 화성적/구조적으로 가장 복잡한 작품입니다.

 

1930년대 중반은 바르톡 작곡의 황금기로 현악 4중주 6번, 미크로코스모스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등 대표작이 대거 탄생했습니다.

 

1930년대 후반 나치의 압박을 피해 1940년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나치에 대한 반감이 있어 독일에서의 콘서트를 거부하고 독일 출판사와도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유분방한 세계관이 헝가리 우익 세력의 반감을 일으켰는데 미국 생활을 그의 후기로 구분합니다.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등이 이때 탄생했습니다. 후기엔 간단하고 명료한 신고전주의적 성향의 곡을 주로 썼습니다.

 

콜럼비아 대학 연구원으로 지내며 강연도 하고 각지에서 모은 민요를 정리했으나 경제적으로 빈곤하였고 미국에 많이 알려진 것도 아니고 그의 음악스타일이 미국인들에게 너무 생소하고 어려웠습니다.

또한 건강이 점차 안 좋아졌으나 재정이 여의치 않아 관리를 제대로 못 하고 뉴욕에서 가난과 백혈병으로 고생하다 1945년생을 마감했습니다.

 

바르톡의 작곡기법은 작곡가 지망생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민속적, 구조적, 타악기적인 음악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톡의 전성기는 1930년대로 이 시기부터 새로운 작풍을 보임. 인상파적인 기법, 쇤베르크의 음렬작법과 민족성이 융합된 독자적 작법 사용했습니다.

이런 특징은 중기 첫 번째 대표작인 ‘피아노 소나타’, ‘제1피아노 협주곡’에서 제대로 구현됐고 민족적 색채를 기조, 종래의 조성이나 민요스러운 음계에 머물지 않고 선율에서의 음과 반주에서의 음 사이 공통음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비상한 긴장감과 밀도 높은 작품 탄생할 수 있었고 ‘현악기, 타악기, 첼로를 위한 음악’ 등 20세기 최대의 걸작이 이런 스타일로 탄생된 것입니다.

 

바르톡은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등과 더불어 현대음악 초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 현대음악은 물론 전체 음악사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물로 살아생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바르톡. 너무나도 앞서간 그의 천재성이 이제야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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