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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최초 여성 지휘자

[Orchestrastory]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지휘자, 어떻게 교육을 받았을까요?

여성의 사회진출에 매우 보수적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최초로 여성 지휘자가 탄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프가니스탄의 교육방식을 보시면 아주 놀라실텐데요.

수 년동안 탈레반은 음악수업과 교양수업을 소녀들에게 제공하 것을 매우 강경하게 금지해왔습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죠.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음악을 비롯한 여러 교육에 제한을 받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아프가니스탄에서 17세의 한 여성 지휘자가 탄생했습니다.

그 곳은 어디였을까요? 아프가니스탄의 한 도시인 카불(Kabul)입니다. 이 곳은 헬리콥터, 사이렌, 그리고 공사소리로 매우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곳입니다. 교통량도 만만치 않은 매우 복잡한 곳이죠. 도시에서 조그만 골목을 찾아 안으로 들어서면, 조용한 곳이 나옵니다. 거기에 한 건물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그 쪽을 들어서면 방문객들은 꽤 독특한 소리로 환영받습니다. 바로 음악소리죠.

소년, 소녀들은 이 곳에서 악기를 연주합니다. 피아노, 첼로, 플루트 뿐만 아니라 루밥(robab)이나 사롯(sarod)과 같은 아프가니스탄 전통 현악기도 연주하는데요. 여기가 바로 아프가니스탄 국립 음악원 (The Afghanistan National Institute of Music) 입니다.

2010년 6월 아프가니스탄 음악을 연구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종족음악학자인 아마드 사마스트(Ahmad N. Sarmast)가 설립했습니다. 이 곳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서양 음악 둘 다 배울 수 있는 교육이 갖춰져 있으며, 다양한 음악 커리큘럼이 제공됩니다. 마치 서양과 전통의 공동 교육기관인 것이죠.

주목할 것은 여학생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 악단입니다. 여학생들은 오케스트라 공연을 곧 앞두고 있는데요. 첫 공연이라 설렘과 떨리는 마음으로 연습에 한창입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곳은 가난과 폭력, 심지어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열악한 도시중 한 곳이기 때문이죠. 그 한가운데서 청중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거의 기적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케스트라 앙상블도 모두 여학생으로 이루어졌고요. 이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여성 지휘자가 있으니, 최초의 아프가니스탄 여성 지휘자, 17살 어린 나이의 네긴 크폴봑(Negin Khpolwak) 입니다.

 

열심히 연습한 끝에, 무대에 오른 활기 넘치는 아프가니스탄의 여학생 단원들. 노력의 결실로 첫 오케스트라 공연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이 나라 문화에서는 아주 역사적인 날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관람객으로 참석한 남학생 동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여학생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해주고 꽃다발도 건넸습니다. 어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의 집까지 바래다 주면서 수고했다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크폴봑은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합니다

. 무대에 오르기 전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이탈리아의 작곡가 무지오 클레멘티의 C장조 피아노 소나티네를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리허설 방에 가서 오케스트라 리허설 공연 마지막 연습을 준비하고 있었죠.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는 아직도 음악 교육에 목말라하고 있었습니다.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경험해야 할 것도 많은 그녀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오케스트라 악단을 조직하고 좋은 음악을 찾아 단원들과 함께 연습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인 코시 아마디드(Khosh Amadeed)는 지휘자에 대하여 “크폴봑은 피아노 연습을 좋아해요. 손이 아플정도로 피아노 치는 것을 즐기죠”라고 수줍은 미소로 그녀를 칭찬했습니다.

크폴봑 지휘자는 “제가 원하는 건 아프가니스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아주 훌륭한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가 되는 것”이라고 큰 꿈을 비춥니다.

태어날 때부터 집안에서 음악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언급한 크폴봑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이 음악 교육을 못하도록 막았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그녀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왔고 음악 교육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곳에서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아프가니스탄 북동쪽에 있는 탈레반 반란군의 거점중의 하나인 보수적인 지역 쿠나르(Kunar)지역입니다. 아주 위험하고 자칫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곳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쿠나르의 여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아니, 갈 수가 없죠. 그리고 그 곳에 자란 많은 여학생들은 가족들의 만류 때문에 음악을 공부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죠.” 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크폴봑은 “그래서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카불로 가야만 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죠. 다행이도 아버지께서 저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음악원은 2010년 설립된 이후 세계 은행의 후원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거기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세계 여러 나라 출신들이죠. 아프가니스탄 뿐 아니라 미국, 호주, 러시아, 콜롬비아 및 인도 등 있습니다. 특히 이 음악원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고아와 노점상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크폴봑은 언제 ANIM음악원에 가서 음악교육을 공식적으로 받았을까요? 그녀가 9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그녀를 카불로 보내면서, 카불에 있는 어린이 집에서 살면서 음악원에 통학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음악원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았습니다. 다행이도 오디션에 합격통지를 받았죠. 그녀는 드디어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게 되었고, 티비에서 여러 음악 공연과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ANIM에 4년간 머물면서 공식적인 커리큘럼을 밟게 되었습니다. 전체 정원은 200명 이상 정도 되었고, 전체 학생 중 4분의 1이 여학생들이었습니다. 약 50명 정도 있었죠.

하지만 그녀에게 배움의 길은 그렇게 평탄한 여정은 아니었습니다. 크폴봑의 어머니는 그녀가 학교에 다닐 수 있게된 것에 대해 만족하셨지만, 그녀가 음악 공부를 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대를 받은 학생은 그녀 뿐만이 아니었죠. 그녀의 동료들도 비슷한 힘든 상황을 겪고있었습니다.

크폴봑의 삼촌은 “우리 가족의 모든 여성들은 음악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전통에 어긋난 행위죠” 라고 말했습니다. 친척들의 압력으로 인해 그녀는 음악원을 6개월 동안 잠시 중단한 채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어쩔수 없었죠. 결국 크폴봑의 아버지는 중간에 개입하셔서 “이 결정은 우리 자녀 크폴봑의 삶입니다. 그녀가 원한다면 음악공부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삼촌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크폴봑이 ANIM으로 돌아올 수 있게 배려해주었습니다.

음악 교육에 대해 사회 전체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가 아닌 나라에서 학생 내부적인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뿌리 깊은 보수주의의 전통이 음악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게 했죠. 심지어 학생들에게 신체적인 폭력도 행사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은 죄”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가령, 작년에 캠퍼스 밖에서 열린 학생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공연 도중, 한 젊은이의 도발적인 자살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폭탄이 터지면서 청중 한명이 죽었고, 설립자인 사마스트(Sarmast)의 청력이 손상되었으며, 그 외 11개의 돌 파편이 학생들 머리 곳곳에 박힌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죠.

자살폭탄테러사건 이후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스스로 오케스트라 무대에 서는 게 두렵지는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단원 모두 “그렇지 않다”고 당당히 얘기합니다. 한 단원은 “우리가 무대에 서는 것은 투쟁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술과 문화, 특히 음악에 대한 폭력과 테러에 맞서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서로를 파멸시키는 행위 보다는 평화와 화합으로 해결해 나가고 싶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죠. 이 중요성에 대하여 오케스트라 음악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라고 언급했습니다.

아울러 크폴봑은 계속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제 음악적 영감의 일부는 저와 저를 비롯한 어려운 상황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입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오케스트라를 통한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 중, 2013년 2월, 크폴봑은 아프가니스탄 음악원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미국 순회 공연의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카네기홀과 워싱턴 DC에 있는 케네디 센터에서 세계가 주목을 받는 자리에서 공연을 했었죠. “그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지휘자로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라고 기쁨의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공연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오케스트라 연습 뿐만 아니라 지휘 공부 또한 본격적으로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첫 여성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 악단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크폴봑은 여기서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서게 된 것이죠.

여학생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 단원에 첫 공연이 이뤄진 것에 대해 그녀는 “오케스트라에서 제가 처음으로 지휘자로 무대에 섰을 때,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무대에 올라 청중이 저를 바라봤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이 세계의 다른 나라와 같이 모든 학생들에게 정상적으로 교육이 제공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거든요. 음악교육을 비롯한 배움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요…모든 여성들이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를 비롯한 음악인으로 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녀의 당찬 포부는 오케스트라 소리에 온 희망과 소망을 실었습니다. 그녀는 힘차게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지휘하면서 함께 연주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녀의 당찬 희망과 포부를 들으면서 그녀의 오케스트라가 또 다시 세계무대로 진입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성지휘자의 사회적, 국가적, 보수장벽과 편견을 뚫고, 그녀의 아름다운 음악과 희망의 노래가 전세계 곳곳에 울려 퍼지기를…

오케스트라스토리 손민경 기자

orchestrasto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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